아웃리거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
마이클 호(Michael Ho) & 토니 모니즈(Tony Moniz
마이클 호(Michael Ho)와 토니 모니즈(Tony Moniz) 소개 - 아웃리거 하와이의 서퍼들
최신 에피소드에서는 진행자 태미 모니즈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서핑 전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인공은 태미의 남편이자 Surfers in Residence 인터뷰에 함께 했던 켈리아 모니즈의 아버지 토니 모니즈(Tammy Moniz), 하와이안 트리플 크라운, 듀크 클래식, 월드컵, 파이프라인 마스터즈 우승자 마이클 호(Michael Ho)입니다.
여왕을 향한 경의 표시 (휴식)
토니는 아웃리거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 발코니에서 내다보이는 와이키키 해변과 유명한 퀸즈 브레이크(Queens Break)를 가리키며 “우리 뒤편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이클은 원조 비치 보이인 아버지와 삼촌 '듀크' 카하나모쿠와 함께 퀸즈에 왔던 때를 회상했습니다. "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죠."
끝없는 여름: 80년대의 프로 서핑 서킷
오아후 해변에서 서핑 기본기를 다진 마이클과 토니는 1980년대에 아이들과 함께 프로 서핑 대회를 위해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토니는 월드 투어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겨울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지구 반대편까지 3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꿈에 그리던 완벽한 서핑 포인트로 향합니다. 실제 이야기죠. 제프리스 베이, 어릴 적 <파도 속으로(Endless Summer)>를 보며 동경했던 그 파도가 있는 곳이에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는데, 파도는 8~10피트에 달했고, 대회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심판진은 토니가 경기 시작 전에 부표 옆에 앉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실격 처리했고, 결국 토니는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그를 막을 순 없었죠.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죠. 돈은 거의 벌지 못했어요" 토니가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열정을 따랐고, 오늘날 와이키키에서 서핑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게 바로 제 박사 학위죠. 제 보상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마이클은 그 당시의 서핑 대회 환경이 오늘날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훨씬 쉬워졌죠. 이제 선수들에게는 코치와 후원사가 있고,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죠. 그때는 후원사조차 없었어요. 겨우 여기저기서 한 달에 200달러, 100달러씩 벌기 시작했죠. 한 달에 500달러면 완전 프로 선수였어요."
거인의 파도 위에서
토니의 평생 목표 중 하나는 서핑 업계의 '거물', 듀크 클래식(Duke Classic)에서 서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서핑계의 '선배'들에 따르면, 듀크 클래식에 참가하는 방법은 바로 큰 파도였습니다. 그래서 토니는 노스 쇼어로 향했습니다. 그 거대한 파도를 타기 위해서였죠. 몇 번의 큰 파도를 경험한 후, 토니와 마이클 둘 다 듀크 클래식에 참가하게 되었고, 토니가 감탄하며 말했듯이, 마이클은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파이프라인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넌 마치 조용한 승부사 같았어." 토니가 마이클에게 말합니다. "말은 없었지만, 파도 속에서 실력으로 보여줬지. 그 누구도 너의 열정을 막지 못하게 했고, 지금도 그래." 토니가 말했듯이, 마이클은 여전히 파이프라인에서 가장 큰 파도를 타고, 튜브 라이딩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재밌네." 마이클이 웃으며 말합니다. "제 아들딸에게 말했죠. '아, 내가 예순이 되면 파이프 서핑을 그만둘 거야.' 그런데 또 '딱 1년만 더, 딱 1년만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이제 64세이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준비된 알로하
태미(Tammy)는 와이키키에서 모두가 엉클 듀크를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토니와 마이클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들만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태미는 이를 두고, 그들이 서핑을 즐겼던 곳곳에 '알로하의 온기를 나눈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그곳을 방문하면, 그들 역시 따뜻하게 환영받고 보살핌을 받습니다. 토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알로하 정신을 함께 가져갔다고 믿습니다. 어디를 가든, 심지어 우리의 자체 서핑 라인업에서도 사랑과 존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큰 보상이 되었죠. 저에게는 듀크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로하의 홍보대사'라는 말을 항상 들었고, 그분이 나누고, 여행하고, 베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이클 또한 알로하 정신에는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서핑 그 이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우리가 플레이트 런치 하나를 사더라도 네 명이 함께 먹고, 나눠 먹을 테니까요."라고 그는 말합니다.
유산을 만나는 시간
인터뷰 전문을 보며 전설들을 만나보고, 새로운 서핑 명소를 여행할 때 지켜야 할 예절, 순서를 잘 지켜 더 빨리 입장하는 방법(그리고 그 후에 루아우에 초대받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둘러보세요. 와이키키 해변에 위치한 아웃리거 리조트에서 직접 파도를 타거나(서핑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토니, 마이클과 같은 현지 유명 인사들과 인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세요. 태미의 말처럼, 이 두 사람은 경이로운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구글에 검색하면 나올 정도의 성과가 많죠." 그녀는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두 분의 존재 자체, 지역사회와 서핑 공동체에서 보여주시는 존재감이야말로 가장 귀한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 우리 아이들, 서핑 공동체, 하와이를 찾는 사람들, 대회에 참가하러 타지에서 온 서퍼들에게 하와이인의 면모를 보여주시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두 분 모두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